나중석 대리님
 
덕분에 무사히 중국 태산 (철차산/ 태화산 경유) 트레킹 5박5일을 잘 마칠수 있도록
애써 주셔서 저희 ' 청복산우회 ' 10 명은 감사 드립니다.
 


1. 산행일시 : 2014 4. 11 (토) ~ 4. 16 (수) ( 5 박 6 일 )


2. 산행장소 : 중국 산동성 석도 철차산 ( 500 미터 )
" 청주 태화산 ( 880 미터 )
" 태안 태 산 (1,545 미터 )


3. 여행사 : (주) 산이 좋은 사람들


"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


4 5 0 여 년전, 조선 전기 4 대 문장가중 한 분인 양사언 선생이 읊조린 " 태산 " 은 산동성 넓은 평야에 우뚝 선
크고 넓고 높은 (?) 해발 1,545 미터의 기암절벽으로 형성된 바위산이며 중국 5 대 악산중 으뜸이라고 자랑하는
전설적인 산으로 당시로서는 다른 수단이 없는 한 오직 걸어서 만이 올라야 하기에 "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 이라는 오직 사람이 계속 걸어서 올라야만 정상을 밟는 것인데 오늘날은 문명의 이기가
이 태산에도 찿아와 케이블카가 등장, 걷지 않고도 케이블카를 타고 또 타면 오를수 있는 " 태산 " 으로
바뀌어서 오늘도 구름같이 몰려드는 관광객, 등산객들로 붐비고 있으니 잠시나마 우린 지나간 세월속에 만시지탄을
금할수가 없었읍니다.


" 케이블카가 아무리 높다 하되 하늘 아래 쇠줄 수레요
타고 가만히 앉아 눈운동만 하면 저절로 올라가거늘
한번도 타보지도 않은채 높고 높은 계단들만 탓하더라 "


양사언 선생께서 타임머신을 타고 오늘 이 시대에 오신다 하면 우리들을 향해 이 " 태산 " 을 어떻게 읊조리실까 ?
궁금하네요. ( 정상까지 오를 돌계단 수가 가이드의 말로는 일직선으로 향해 있는 돌계단 수만 7,500 개 이고
좌우로 갈라지는 돌계단 수는 아무도 헤아리지 않았다 하니 어림하여 9,000 여개는 되리라. )



 
 
뱃고동 소리 요란하게 (?) 인천항 제1 국제여객터미날을 떠난 거대 (?) 한 '화동훼리' 호는 중국 석도항을 향해
밤새 17 시간을 달려 도착한, 둘째날의 아침, 9 시경 접안 할 예정이었으나 짙은 안개, 미세먼지 등
으로 인해 앞의 시야가 보이지 않아 접안이 2 시간 30 분 이상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 예정된 스케줄인 중국의
근대 도교의 발상지라는 철차산 등정이 늦어 졌고 점심식사후, 늦게나마 2 시간 여에 걸친 산행을 마쳤으며
저녁식사후, 청주를 향해 버스로 4 시간을 이동하는 도중에서도 길을 잘못 들어 한때 헤매는 둥 어둠 속에서
간신히 예정된 호텔에 들어오니 밤 1 시가 넘었고 2 인 1 실로 배정된 산우들의 코고는 소리는 요란(?) 했답니다.




 
 
세쨰날은, 다소 피곤한 기색속에 아침부터 강행되는 중국 제일의 계곡이 있는 태화산 등정이 시작되어 산으로 접어
들면서 아름다운 기암절벽에 감탄사가 나오는데 관광단지로 꾸미느라 여기저기 인공으로 폭포를 만들어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낙하시켜 관광객들의 시선을 얼핏 사로 잡는듯 하나 자연미가 훼손 되는등 왠지 씁쓸한 느낌을 감출수
없고 이렇게 해야만 했을까하는 아쉬움속에 사람이나 자연이나 아~주 못 생기지 않는 한, 조금 못 나도 성형 안된
원래의 제모습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면서 3 시간 반에 걸친 아름답고 수려한 태화산 등정을 마쳤고,
세계 최대의 미륵대불과 중국불교, 도교. 유교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현장에서 우리들 일행은 또 다른
중국을 체험키도 하였으며. 저녁식사후엔 " 태산 " 이 있는 태안을 향하여 4 시간의 긴 버스이동이 있었읍니다.



 
 
 
넷째날, 아침 드디어 이번 여정의 하일라이트인 " 태산 " 을 등반하는 날, 가슴이 설레었고 오고 싶었고
보고 싶었던 ( 마치 애인 만나듯 얘기 하네 ..... ) 전설적인 산, 대은암 도화동 시절 전 부터 읊조리던 양사언 선생
께서 가르쳐 주고 읊조리게 하여 우리들 인생사에 어려운 역경이 닥쳤을 때 마다 이를 극복하는 힘과 교훈을 준
선생의 시조 "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 "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 속의
태산이 있는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한후, 우리 일행들을 실은 관광버스는 숙소를 떠나, 인구 천만이 넘는 번화한
태안 시가지를 지나 태산 입구에 도착하니, 수 많은 관광객, 등산객들이 운집한 가운데 태산 정상을 향하여
올라 갈 탑승장까지 실어 나를,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네요.
셔틀버스로 약 25 분을 지나 해발 1,000 미터 지점인 탑승장에 도착, 여기서 케이블카로 15 분 올라 해발
1,400 미터인 남천문에 도착하기 까지 온통 " 태산 " 은 소나무, 전나무, 측백나무, 잣나무 등 각종 침엽수, 활엽수에
샛노란 개나리들이 온 산, 계곡들을 샛노랗게 물드리는 풍경은 이색스러웠네요. ( 개나리는 통상 산 밑에서만 보아
왔는데 이렇게 높은곳 까지 올라 오다니 놀랍습니다. ) 다시 걸어서 정상으로 그 옛날에 옥황상제가 살았다는
'옥황정' 을 향해 30 분 걸으니 드디어 1,545 미터 '태산극정' 에 도달 합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정상 부근에서 시뻘건 불길에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솟고 있는데 오늘이 마침 음력
3 월 15 일 태산 산실령님의 생일이라 4 면에 앞,뒤가 터진 제 올리는 젯집 (제삿상이 아님) 안에서 끊임없이 시뻘건
불길이 타오르고 제삿향을 풍기면서 시커먼 연기가 마치 정상이 불길에 싸여 불 붙은 듯 합니다.
'태산극정' 돌기둥 둘레에는 넓게 수천 수만의 무수한 사랑의 자물세가 2 중 3 중으로 줄에 묶여 연인들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의 징표로 자물세로 묶어 묶은후, 산 아래로 던져 버린 열쇠들은 이 태산이 다하는 날 까지, 찿지 못하게
하여, 그들을 영원히 사랑으로 묶기게 할 바램 뿐 입니다.
.


자아 ! 이제부터 우리에게 정상으로 오르기까지는 쉬웠었는데, 하산 할 내리막 코스는 셋으로 나뉘어 3 ~ 4 시간씩
걸리는 본격적인 내리막 산행이 시작되어, A 코스는 다소 난코스로 100 미터 정도 바위에 박혀진 쇠줄을 잡고
내려 가는 ( 일명, 바위에 박힌 쇠줄이 튼튼한(?) 가를 점검하는 쇠줄 점검팀 ㅎㅎ : 
B 코스는 7,500 개의 돌계단을 밟고 내려가는 ( 일명, 7,500 개의 돌계단들이 바닥에서 이탈(?)된건 없나
달아난 돌계단 찿는팀 ㅋㅋ 
C 코스는 오던길 거꾸로 내려가는 ( 일명, 하산 '눈'관광 및 케이블카 안전점검팀 ㅋㅋ :
A 와 B 코스를 택한 산우들은 서로 자기들이 선택한 코스들이 더 힘들고 어려웠다고 한동안 계속 이바구 저바구로
설전을 하였다우. C 코스 산우들은 A 와 B 코스 산우들이 내려 오는 동안 버스에서 2 시간 이상 기다림에 지쳐
자리를 이탈, 주류를 즐기다가 이탈된 손님(?)들을 찿아 헤맨 중국 호랑이 기사한테 걸려 혼쭐이 났다는 군요. ㅋㅋ
내리막 코스에서 다소는 급경사로 험난(?) 하고 다리가 후들짝(?) 거리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도처에, 기암절벽에
깎아지른 벼랑들이 연이어 져서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탄성들이 나왔읍니다.



하산 후, 세 코스로 나뉘어 흩어졌던 산우들이 한사람의 낙오도 없이 ( 있으면 큰일나요. ㅋㅋ) 반가운 얼굴로 합류,
여정의 첫 기항지 였던 석도항으로 돌아가는 긴 4 ~ 5 시간 버스 이동의 지루함 속에 '유방' 시 도착하기 전,
'임치' 에 있는 '고차박물관' 을 견학 했는데 1 9 9 0 년, '제남' 에서 '청도' 로 가는 고속도로를 건설 하다가
발견된 2 8 0 0 여 년전, 춘추시대 중기 제나라 때의 마차와 말의 대규모 순장터는, '시안' 의 진시황의 병마총과
비견되는 곳 으로서, 선명한 바퀴의 수레 등 인골도 발견된 '차마유적지' 를 보니, 그저 숙연하여 말문들이
막힐 뿐 입니다.



'유방'시 도착하고 1 박 하고난 다섯째 날, 다시 버스로 이동 '석도' 에 도착, 1 2 0 0 여 년전, 통일 신라의
무장 출신으로 청해진 (지금의 완도) 대사로 알려진 신라의 장보고 장군의 유적지를 둘러 봅니다.
청해진 의 천민 출신으로 태어나 외국 (당) 으로 건너가 당시, 한, 중, 일 을 넘나 들며, 해상왕, 무역왕으로
이름을 떨친 그가 남긴 업적들은 현재도 중국인들이 그를 크게 기리고 있는데 놀랐으며. 한편 한국인으로
부끄러운 마음마져 들었읍니다. 당시, 그가 만든 '적산법화원' 을 비롯한 유적들은 한국인의 한사람으로서
무척이나 자랑 스러웠고, 마음속 깊이 올라오는 그 무언가 뭉클함 마져 느꼈 읍니다.




" 태산 " 이란 산은 케이블카 에서도 '한눈에' 장엄 하고 웅장 했으며, 깎아 지른 바위산 들 사이로 펼쳐 지는
계곡들은 가히, 환상적 이었고, 수천년을 이어 오면서 중국인들이 애지 중지 하는 '신령한' 산으로 그들의 가슴에
영원토록 남을 것이며, 세계인들이 언제나 즐겨 찿는 ' 명산'으로 언제나 기억 되길 바랍니다.


<출처 : 청복산우회 임진성님>